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처음에 이번 미국·이란 충돌을 보며 그냥 또 하나의 지정학적 헤드라인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시장이 흔들리는 방식이 예전과 달랐습니다. 기업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라, 투자자들이 미래에 매길 프리미엄 자체를 먼저 깎아내리고 있었습니다. 건축 현장에서 20년 넘게 일해온 저로서는 이 상황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뼈대는 멀쩡한데 마감재가 박살나는 장면, 저는 그걸 수없이 봐왔습니다.

할인율 쇼크: 시장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
지금 주식 시장이 겪고 있는 것은 밸류에이션 할인율 쇼크입니다. 여기서 밸류에이션 할인율이란, 투자자들이 기업의 미래 수익에 얼마짜리 프리미엄을 붙여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값입니다. 기업이 돈을 못 버는 게 아니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그 돈의 현재 가치를 훨씬 낮게 계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0년 전 제가 첫 현장에서 겪었던 공사 직전 사고도 비슷했습니다. 건물 자체가 무너진 게 아니었는데도, 저는 모든 계획이 끝났다고 느꼈습니다. 눈앞의 파손된 마감재만 보고 뼈대의 상태를 잊어버린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SNS 발언과 이란 최고 지도부의 맞대응이 반복되면서 불확실성의 악순환이 돌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란이 45일 임시 휴전안에 쉽게 도장을 찍지 못하는 배경에 1300년 전 역사가 있다는 점입니다. 657년 시핀 전투에서 알리의 군대는 다 이긴 싸움을 적군의 기만술에 속아 억지 휴전을 맺었고, 그 결과로 시아파와 수니파가 영구히 갈라졌습니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지도부 입장에서 임시 휴전은 그 기만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는 함정으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숫자가 아닌 감정의 영역이고, 그래서 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정의 소용돌이 너머에 있는 숫자를 더 주목합니다. 2026년 이란의 경제성장률 전망이 -2%라는 것은 단순한 통계가 아닙니다. 명분만으로 버티기에는 국민들의 생활고가 이미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반면 미국의 2026년 성장률 전망은 2.2%입니다(출처: IMF 세계경제전망). 체력의 차이가 이렇게 벌어져 있으면, 트럼프 특유의 3단계 협상 패턴인 거친 압박, 슬그머니 연기, 임시 합의가 이번에도 결국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2019년 중국에 145% 관세를 예고하며 난리를 치다 제네바 합의로 마무리한 사례가 그 전형이었습니다.
지금 시장에서 진짜로 확인해야 할 핵심 지표는 두 가지입니다.
- 호르무즈 해협의 실제 항행 정상화 여부: 종전·휴전이라는 기사 문구가 아니라, 유조선들이 실제로 다시 해협을 통과하는 물량이 회복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 미국 빅테크의 2분기 AI 투자 가이던스: 1분기 실적 시즌에서 전쟁 여파로 AI 설비 투자 계획을 낮추는지를 봐야 합니다.
헤드라인의 공포에 떨 필요는 없지만, 이 두 숫자에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AI 투자와 에너지 안보: 시장의 새로운 뼈대
건축에서 제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구조체가 살아 있으면 마감은 다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시장의 구조체는 AI 캐펙스(AI CapEx) 사이클입니다. 여기서 AI 캐펙스란,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AI 기반 미래 수익 창출을 위해 데이터 센터, 반도체 장비, 소프트웨어 인프라에 쏟아붓는 대규모 자본 지출을 의미합니다. 이 투자를 움직이는 동력은 유가가 아니라, 빅테크들이 이미 금고에 쌓아둔 막대한 잉여 현금과 역사적으로 높은 순이익률에서 나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과거 경기 침체 때의 시장 붕괴와는 결이 다릅니다. 1970년대 오일 쇼크나 과거 중동 전쟁 때 주식 시장이 무너진 이유는 그 시절 강세장을 이끈 주도 산업이 소비재와 전통 제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유가가 치솟으면 공장 물류에 병목이 생기고 소비자가 지갑을 닫아 경제 전체가 직격탄을 맞는 구조였습니다. 반면 반도체와 AI 소프트웨어는 고유가 충격이 원가 구조에 직접 타격을 주지 않습니다. 저는 AI 투자가 유가라는 구시대적 변수에 휘둘리기에는 너무 독립적인 동력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25년 1분기 잠정 영업이익으로 57조 원을 넘기며 작년 한 해 영업이익을 단 한 분기 만에 뛰어넘었습니다. 이 AI 반도체발 훈풍이 지속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빅테크의 투자 계획이 꺾이지 않는 한 유효하다는 것입니다(출처: 삼성전자 IR).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번 지정학적 위기는 에너지 인프라의 성격을 바꿔버렸습니다. 에너지 안보 인프라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있는데, 여기서 에너지 안보 인프라란 태양광·원전·전력망 같은 설비를 친환경 정책 테마가 아니라 국가 생존과 직결된 안보 자산으로 접근하는 것을 말합니다. 해로가 막히는 상황을 두 눈으로 지켜본 각국 정부가 에너지 자립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한 변화입니다.
다만 저는 이 흐름에 한 가지 경계심을 갖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라는 명분 아래 시장 효율성이 무시되고 특정 빅테크 기업들의 독점 구조가 고착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안보 투자 테마가 시장의 새로운 섹터로 부상하는 것과, 그 자금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삼성전자의 기록적 실적에 취해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정상화라는 실질 지표를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재를 생산해도 길이 막히면 현장에 닿지 못합니다. 제가 건축 현장에서 배운 것처럼, 공급망의 동맥이 열려 있어야 비로소 뼈대의 체력이 의미를 갖습니다.
이번 변동장은 끝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이란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트럼프의 협상 패턴이 충돌하는 구간은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험란하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투자 사이클이라는 구조체가 살아 있는 한, 지금의 마감재 손상은 충분히 복구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호르무즈 항행 물량과 빅테크의 2분기 가이던스, 이 두 숫자만 매의 눈으로 따라가시길 권합니다. 헤드라인의 소음에 휩쓸리기보다 숫자가 주는 경고음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 이 시장에서 가장 현명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전문 금융 기관과 상담 후 본인의 판단으로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