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당근마켓에 100만 원짜리 골프채 풀 세트가 10만 원에 올라온 지 3주째, 문의가 단 한 건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그냥 특이한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데이터를 하나씩 들여다보니 이건 캠핑도, 스키도, 자전거도, 낚시도 전부 같은 방향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골프부터 러닝까지, 대한민국 중산층의 주말을 채우던 취미들이 왜 지금 동시에 흔들리는지, 제가 직접 정리해 봤습니다.
코로나 거품 : 진짜 수요가 아니었다
저도 코로나 때 친구들 포함해서 주변에서 텐트 사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해외여행을 못 가니까 그 돈이 전부 국내 레저로 쏟아졌고, 캠핑 시장은 순식간에 6조 9천억 원 규모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SNS에 감성 캠핑 사진 하나 올리려고 텐트에 100만 원, 타프에 30만 원, 화로대에 코펠에 랜턴까지 수백만 원을 쏟아붓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써봤는데, 캠핑 장비를 갖추는 건 처음 생각보다 훨씬 더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장비값만 문제가 아니라 캠핑장 예약비, 이동비, 식재료비까지 합치면 한 번 나가는 데 수십만 원이 그냥 사라졌습니다. 특히 저는 캠피장 이용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업체간 경쟁적으로 서로 가격을 올리고 있는거 아니야? 라고도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대체재 효과(Substitution Effect)입니다. 대체재 효과란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구하기 어려울 때 비슷한 기능의 다른 상품으로 수요를 옮기는 현상입니다. 해외여행이라는 고속도로가 막히자 캠핑이라는 국도로 수요가 몰린 것이 전형적인 대체재 효과였고, 하늘길이 다시 열리는 순간 그 수요는 원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2024년 캠핑 관련 소비는 전년 대비 11.8% 감소했고, 1인당 캠핑 용품 지출은 2022년 대비 약 30% 줄었습니다. 코로나 특수를 믿고 전국에 우후죽순 생겨났던 야영장은 2019년 2,367개에서 2023년 3,695개로 56%나 늘어났지만, 정작 방문객이 빠지니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어진 겁니다. 캠핑 브랜드 스노우피크는 2023년 순이익이 사실상 증발하면서 2024년 4월 자진 상장 폐지를 선택했고, 국내 브랜드 헬리녹스도 매출이 786억 원에서 424억 원으로 반토막 났습니다.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2022년 전국 골프장 이용객이 5천만 명을 넘겼다가 2024년에는 4,700만 명대로 떨어졌습니다. 법인 카드, 즉 기업의 접대성 비용으로 유지되던 수요가 걷히자 1인당 실제 비용이 그대로 드러난 겁니다. 라운딩 한 번에 20~30만 원, 장비까지 합산하면 한 달 100만 원을 가뿐히 넘기는 취미가 내 돈으로 하기엔 부담스럽다는 현실을 마주한 것입니다. 거품이 낀 대표적인 지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골프장 이용객: 2022년 5천만 명 → 2024년 4,700만 명대 (2년 연속 감소), 2. 캠핑 소비: 2024년 전년 대비 11.8% 감소, 1인 지출 2022년 대비 30% 하락, 3. 스키장 방문객: 2011년 686만 명 → 2024년 443만 명 (35% 감소), 4. 자전거 업체 알톤스포츠: 매출 전년 대비 29% 감소, 42억 원 적자 전환 입니다.
중산층 지갑 : 숫자로 확인되는 구조적 위기
제가 직접 데이터를 보고 가장 놀랐던 부분은 중산층 가구의 여유자금이 월 65만 8천 원까지 줄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게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벌어들이는 돈은 거의 늘지 않았는데 세금, 보험료, 대출 이자 같은 비소비 지출(Non-Consumption Expenditure), 즉 쓰지 않아도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이 한 달에 77만 7천 원까지 올랐기 때문입니다. 전년 대비 12.8% 증가한 수치입니다. 비소비 지출이란 소비 활동과 무관하게 의무적으로 지출되는 세금, 사회보험료, 이자 비용 등을 통칭합니다. 쉽게 말해 월급에서 이 돈이 먼저 빠져나가고 나면 실제로 내 의지로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중산층 소득 증가율은 1.8%로 최근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인 반면, 가계 부채는 가처분소득(Disposable Income) 대비 90% 수준에 달합니다. 가처분소득이란 세금과 보험료 등을 제외하고 개인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을 말합니다. 소득의 대부분이 빚을 갚는 데 쓰이는 상황에서 라운딩 한 번, 캠핑 한 번이 사치가 된 건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출처: 통계청). 제 경험상 이 구조가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월급이 700만 원인 40대 직장인이라도 대출이자, 세금, 아이 교육비를 빼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이 수십만 원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사람이 골프채를 팔고 텐트를 당근마켓에 올리는 건 취미가 싫어서가 아닙니다. 유지할 여력 자체가 사라진 겁니다. 스키 산업은 또 다른 차원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국립기상과학원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한국의 겨울은 18일이나 짧아졌습니다. 예전에는 한 시즌에 120~130일 영업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80~100일이 한계입니다. 눈이 부족하면 제설기(Snow Cannon)로 인공눈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설기란 물을 고압으로 분사해 냉각시켜 인공 눈을 만드는 장비로, 대규모 전력 소비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최근 3년 사이 산업용 전기 요금이 75.8%나 올랐습니다. 겨울은 짧아지고 인공눈 제조 비용은 두 배 가까이 뛰는, 양방향 압박이 동시에 가해진 겁니다. 결국 2009년 17곳이던 전국 스키장은 지금 13곳만 남았고, 전문가들은 10년 안에 절반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합니다(출처: 국립기상과학원).
러닝 전환 : 허세 대신 진짜 취미를 찾다
취미 산업이 이렇게 흔들리는데, 사람들이 그냥 집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사라진 수요는 러닝으로 대거 이동했습니다. 저는 2023년부터 러닝에 입문했는데, 20~30대 젊은층 입문자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지표를 보니 2025년 기준 국내 러닝 인구가 천만 명을 돌파했고, 러닝 관련 소비는 전년 대비 270% 증가했습니다. 2025년 한 해에만 전국에서 마라톤 대회가 254회 열렸고 참가 인원이 100만 명을 넘겼습니다. 제가 공원에서 러닝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 사람들 표정이 골프장 인증샷 찍던 사람들보다 훨씬 편해 보인다는 겁니다. 운동화 한 켤레면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고, 예약도 없고, 장비 갖출 필요도 없습니다. 자이언트(GIANT) 같은 세계 최대 자전거 브랜드가 재고 손실 576억 원을 기록하며 고전하는 사이, 운동화 한 켤레로 시작하는 러닝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겁니다. 낚시 인구는 720만 명이지만 20대 비중이 5.7%에 불과하고 40대 이상이 전체의 70%를 차지합니다. 세대 간 문화 전수가 끊기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아버지가 아들 손잡고 저수지 가던 주말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저도 주변을 보며 실감합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변화를 K자형 양극화(K-Shaped Polariz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K자형 양극화란 경제 충격 이후 고소득층은 소비를 빠르게 회복하고 늘리는 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계속 하락하는 격차 심화 현상을 말합니다. 중산층이라는 이름은 남아 있지만 중산층의 생활은 이미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결국 이 취미들의 몰락이 슬프기만 한 건 아닙니다. 베란다 구석에 쌓인 먼지, 당근마켓에 올라온 골프채, 반토막 난 캠핑 브랜드 매출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취미를 사고 인증샷으로 완성하던 문화가 지갑의 한계 앞에서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장비 없이 땀으로 채우는 취미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운동화를 꺼내 드는 분이 있다면, 어쩌면 그게 가장 솔직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